로이스 로리 글, 장은수 옮김, <기억 전달자>, 2007

2023. 11. 25. 22:11카테고리 없음

 

 

원작 <기억 전달자>를 읽고 영화 <더 기버>를 봤다. 국내에서 20만부, (내가 갖고 있는 책이 무려 67쇄.) 전 세계적으로 110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고 미국 교과서에도 실린 책.
저자인 로이스 로우리가 양로원에 계신 아버지를 6주마다 뵈러 가면서 어렸을때 일찍 세상을 떠난 언니에 대한 기억으로 괴로워하는 아버지를 보며 '저렇게 괴로운 기억이라면 차라리 잊어버리는게 더 행복한거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경험을 모티브로 이야기를 쓰게 됐다고 한다.
만화책으로 몇 년전에 처음보고 모임때문에 이번에 소설, 영화를 다 봤지만 역시 원작소설이 최고다. 영화는 세트나 CG, 의상과 소품들에 공을 들인 비용에 비해 러닝타임이 의아할 정도로 너무 짧았다. (1시간 반도 안돼서 끝난다.) 배우도 최고의 배우, 당대 최고의 팝스타까지 캐스팅하고 정작 인간이 잃어버린 감정과 인류의 역사와 문화는 사진 몇 장으로 스크랩하듯 처리해버리다니.
소설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100페이지 정도까지가 영화에서 10분이다.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품이고, 토론하기에도 좋다. 
- 모든 갈등의 요소가 거세된 사회. <편리>라는 이름으로 날씨까지 통제하려 언덕조차 없애버린 평평한 지형.
 모든것을 중앙에서 통제하는 커뮤니티(마을)다. 직업도 마을 원로들이 열두 살 생일날에 정해주고, 심지어 결혼을 하고 싶어도 신청을 하면 심사해서 적절한 사람을 '골라'준다. 산아제한으로 인구도 통제하는데 그마저도 부부의 사랑에 의해서 아이가 태어나는게 아니라 신청하면 산모가 낳은 아이들 중에서 '배급'해준다. 
<늘 같은 상태>에서 사람들은 쾌적하게 살아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작은 불편함을 비롯해서 고통이 사라진 이상적인 사회처럼 보이기까지 하다. 상처주고 상처받을 일이 없다. 현재 삶이 너무 고달픈 이들에게는 꿈에 그리는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약에 의해 감정마저 통제되기 때문에 감정의 동요도 있을 수 없다. 전에 없던 갈등이나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했을때를 위해 단 한 사람의 '기억보유자'에게 의견을 구한다. 
때문에 늘 같은 상태에 포함될 수 없는 이들은 <임무해제>가 되고만다. 노인들, 모자란 아이, 장애인들이다. 능력에 있어 우열이 존재하긴 하나 시스템이 이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원활하게 마을이 돌아가게 한다.
그러나 이 마을 사람들은 그래서 고통을 모르는  대신 사랑과 예술, 그리고 지혜와 용기 또한 모르고 살아간다.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도 지워버려 '색깔'이란 개념도 없다. 이 지점에서 유토피아는 순식간에 디스토피아가 된다.
다른 영화에서 일반적으로 디스토피아는 기계나 인공지능이 사람을 지배하거나, 능력과 재력에서 우열이 극단적으로 나뉜 두 셰계를 보여주곤 하는데 지금처럼 늘 속도와 편리함을 지향하는 궁극적인 사회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싶을 정도로 좀 다른 설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매우 신선했다. 각색해서 우리나라 정황에 맞게 다시 만들어보고 싶다. 
군사독재와 전체주의만 획일성이 아니라 우리나라는 현재도 여전히 일상에 은연중에 획일화된 모습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개인이 소신대로 살아가기가 여전히 쉽지 않은 사회며, 학벌과 재력, 사회적인 위치, 오래된 관습에서 나오는 권력이 놀랍도록 편협하고 획일적인 갈등양상을 낳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며느라기>를 볼 때 너무나도 비슷한 가정 내 갈등 상황들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또한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자녀교육이다. 한국사회는 눈치보지 않고 소신대로 아이를 키우기가 여전히 너무 힘든사회다. 
아직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