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마 타로, 윤구병 옮김 <까마귀 소년>, 비룡소, 1996

2023. 8. 3. 14:32카테고리 없음

 

출판계에서 일하다 보니 아무래도 직,간접적으로 책 표지를 볼 일이 아무래도 많다. 여러 기관에서 선정하는 추천목록을 들여다 보는 경우도 꽤 있고, 어린이책이 많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1년에 10~20회 이상 매해 바뀌는 추천목록들을 볼 기회가 있는데 유독 눈에 들어오는 표지들이 있다. 이 책도 그런 책들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표지를 보면 별로 읽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특히나 길조보다는 흉조로 인식되어있는 까마귀가 제목이고 게다가 <까마귀 소년>이라니. 소년의 얼굴은 어떤가. 사팔뜨기 같아 보이는 눈모양과 벌어져 있는 입술... 거친 펜터치로 표현된 소년의 모습은 뭔가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다소 기괴하게 보이는 무서운 표지여서 강렬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그래서 표지를 보고 기억할 수 있었다. 

 

이번에 처음 읽게 됐는데 처음 읽었을때는 별다른 큰 감흥은 없었다. 아무도 몰랐던 존재감 없는 아이를 어느 날 새로 오신 선생님께서 아이(땅꼬마)를 유심히 보시고는 머루가 열리는 곳이나, 돼지감자가 자라는 곳 등을 이 아이만이 알고 있는 걸 보고 아이를 더 깊이 들여다 보게 된다. 그 이후에도 선생님은 땅꼬마와 자주 이야기 나누면서 학예회에서 까마귀 울음소리를 흉내내는 자리를 마련해주신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땅꼬마는 여러 해 동안 들었던 여러 다양한 까마귀 소리를 흉내내게 된다. 그리고 그 소리에 사람들은 감명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렇게 줄거리를 단순하게 정리하면 이 책이 담고 있는 긴 시간의 퇴적과 깊은 진심의 울림이 제대로 전달이 안된다. 그래서 책을 다시 천천히 봐야한다. 

 

아주 오랫동안 외로운 시간들을 보냈거나,  한 명이 아이라도 소외되지 않도록 일일이 챙기고 두루 살피는 선생님은 아마도 이 이야기에 깊게 공감하시게 되는 것 같다. 온 마음을 다해 아이들을 대하시는 선생님들. 

나도 한때는 잠깐이나마 선생님이 장래희망이었던 적이 있어서 최근 선생님들의 상황에 마음이 무겁다. 

이렇게 온 마음을 다 하시는 분들... 본인이 지향하는 삶의 가치들에 투철한 분들이 분명 어디에나 있을것이다. 많지는 않을지라도. 온 마음을 다하는 스님들, 온 마음을 다하는 목사님, 신부님, 교육자, 운동가, 작가...

그 분들이 한 사람에게 대하는 진심이 또 다른 씨앗을 뿌리는 일인것이다. 

 

어제 한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우연히 빵집에서 제자를 만난 일을 sns에 올리셨다.

 

<빵집에 들어가려는데 앞에서 걸어오는 남자가,
“선생님 저 순관입니다. 기억하세요?”
”이 빵집 제 아내가 해요.”
“자기야 인사드려. 학교 다닐 때 유일하게 나를 안 때리던 선생님이야. 우리 선생님 아니었으면 자기를 만나지 못했지.”
”같이 교보문고에 아이들 데리고 책 사러 갔던 거 기억하세요?”
이십 년 전에 가르친 제자를 만나 가슴이 뜨거웠다.
내가 너를 잘 기억해. 다 기억이 나.
나를 알아봐주던 너를 어떻게 잊겠니.>
 
한 제자에 대한 온 마음이 그 사람의 인생을 바꾼 것이다. 
선생님께 존경을 표한다. 
 
<까마귀 소년>의 깊은 울림이 왜 진심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인지 조금이나마 이해를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