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홀 에츠 글.그림 , 박철주 옮김, <숲 속에서>

2022. 9. 4. 23:09카테고리 없음

<숲 속에서>는 마쓰이 다다시 <어린이 그림책의 세계>에 소개돼서 호기심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딱 봐도 촌스러워 보이는 표지. 제목 서체와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그림체라 진부한 내용이 아닐까 싶은데 이런 흑백 작품중에 강력한 흡입력을 가진 작품들을 만날때가 있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가 그랬다. 처음에는 정말 읽고 싶지 않을 만큼 어둡고 칙칙하고 빽빽한 지면 구성이었는데 막상 읽어가니까 내용에 몰입하게 된 기억이 있다. 

이 작품 <숲 속에서>의 흑백은 아이의 상상의 세계를 나타낸 듯 하다. 그래서 등장하는 동물들은 전부 의인화 되어있고, 저마다 하나씩은 무언가를 가지고 행진에 따라 나선다. 

아이들은 행진을 왜 좋아할까?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에는 공통적으로 '축제'라는 요소가 있는 것 같다.  분수, 불꽃놀이, 행진... 그리고 이야기를 진행시키는데 있어서 무작정 순조롭게 그리지 않는다. 꼭 무언가 불협화음 비슷한 장치가 있다. 토끼의 존재가 그렇다. 토끼의 행동은 시선을 끈다.  다 하는데 안 하기 때문이다. 이런 행동을 사색을 하게 만든다. 

<어린이 그림책이 세계>에 나오는 마쓰이 다다시의 재미있는 글- "나팔이나 피리는 예로부터 마법의 힘을 가졌다고 생각했던 물건입니다. 성경이나 북유럽 신화, 인도, 중국, 일본, 한국의 옛날이야기에 되풀이되어 나옵니다. " 

그렇구나 나팔로 인해 동물들이 모이게 되는데 아이의 상상 속에서 세계를 구성하게 만드는 도구의 역할을 한다. 

오케스트라로 말하자면 지휘봉 같은것이고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게 하는 신호와도 같다. 

그리고 <깊은 밤 꿈속에서>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한바탕 모험뒤에는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 작품에서는 아버지가 아이의 상상 안으로 들어온다. 아이의 상상으로 들어온 아빠는 현실속에서 근엄하고 거리감이 있는 아빠가 아니라

아이의 상상안으로 몸을 숙여 들어온, 아이의 눈높이로 내려온 아빠다. 

이런 리듬감 있는 구성이 참 감탄스럽다. 얼핏 보기에 단순한 전개 같지만 잘 만든 음악같이 아기자기한 구조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