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수정, <세상 끝까지 펼쳐지는 치마>, 글로연, 2019

2022. 2. 27. 23:44카테고리 없음

다음달 모임 발제도서로 정한 그림책이다.  주제는 <옷>이다. 작년에도 그랬는데 마음에 드는 하나의 책을 정하고, 그에 관한 주제를 정한 다음, 다른 한 권을 찾는 순서다. <꼬마 할머니의 비밀>을 재밌게 읽었는데 그 책에 중요한 이야기 코드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옷>이다. 

옷이란게 참 묘하다.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의식을 규정하는 측면도 있는것 같다. 왜 남자들은 예비군복만 입으면 껄렁해지는걸까? 지금도 사실 잘 모르겠다.  예전에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근처에 있는 소금광산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그 광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광부옷으로 갈아입어야했다. 예외는 없었다. 관광객들이 자신이 입고 온 개성넘치는 사복(?)을 광부옷으로 갈아입은 순간, 모두가 똑같이 보이는 재미있는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마치 포로수용소에 온 것 같았다. 

순식간에 모두를 비슷하게 만드는 마법이었다. 그래서 나에겐 교복은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일까 난 지금도 

비슷한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일하는 샐러리맨이 되는걸 제일 싫어한다. 물론 지금 샐러리맨이긴 하지만 내가 옷을 선택하지, 옷에 나를 맞추는건 질색이다. 

옷은 그래서 개인의 의지가 작용한 자아의 확장이자, 변신으로 작용할 때 더 분명한 개성을 나타낸다. 그 모습의 절정이

바로 이 그림책 <세상 끝까지 펼쳐지는 치마>인듯하다. 

 

가능하면 작가의 머리를 열어서 이 책을 어떻게 설계했는지 살펴보고 싶다. 참 신비한 상상력이다. 꿀벌, 꽃송이, 새, 개구리, 무당벌레, 호랑이 등등 다양한 동식물의 치마를 매개로 치마 속에 세계 각국의 명작들이 수놓아져있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스위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영국), 뮬란(중국), 바리공주(한국), 빨강머리 앤(캐나다), 오즈의 마법사(미국) 외에도 여러 나라 명작들이 모티브가 되어 하나의 동식물의 치마에 주름과 무늬로 장식을 했다. 

작가 소개글을 보니 조카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바람이 영감이 되어준듯하다. 

여러 뛰어난 작가들의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누구누구에게 이 책을~ 이런 표현을 자주 보는데 그런 구체성이 더욱 깊고 울림이 진한 공감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감정이입이 일어나는 건 이런 부분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그저 관찰에 의한 표현에 그치면 모방에 빠지기 쉽지 않을까... 

창의적 표현이란 심층에 도달하려면 그만큼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단순한 스킬과 근시안적 시각은 잠시 눈을 속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금새 사라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