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 토카르축 글,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이지원 옮김, <잃어버린 영혼>, 사계절, 2018

2021. 10. 11. 20:12카테고리 없음

“누군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세상은 땀 흘리고 지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그리고 그들을 놓친 영혼들로 가득 차 보일 거예요. 영혼은 주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큰 혼란이 벌어져요. 영혼은 머리를 잃고, 사람은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거죠. 영혼들은 그래도 자기가 주인을 잃었다는 걸 알지만, 사람들은 보통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 올가 토카르축 글,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잃어버린 영혼>중에서. 
만약 제대로 영성에 관한 그림책을 만든다면 이런 그림책이지 않을까한다. 
원영 스님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인 것들>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인디언 원주민들이 말을 타고 달리다가도 잠깐씩 멈춰서 뒤를 돌아보곤 한다는…너무 빨리 달려서 영혼이 못쫓아올까봐. 

 

 마치 모눈종이 같은 내지,  거친 종이질감, 페이지 위에 인쇄된 의문의 숫자들, 중간 중간 삽지되어 있는 트레이싱지가 ... 수수께끼였는데 출판사 보도자료를 보고 나서야 풀렸다. 

<그림은 글이 서술하지 않고 열어놓은 이야기의 여백을 차근차근 채워 간다. 어린 영혼이 들러 오는 과거의 공간들. 어떤 날의 파티장과 낡은 레스토랑, 겨울의 빈 공원과 스치듯 흘러가는 기차의 풍경들. 책의 왼쪽은 오고 있는 영혼의 공간이고, 오른쪽은 머물러 기다리는 남자의 공간이다. 그리고 그 두 공간은 낡고 빛바랜 바탕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바탕의 재료는 실제로 요안나 콘세이요가 벼룩시장에서 구한 회계장부의 속지여서 사용 당시의 숫자 스탬프가 찍혀 있고, 마치 반복적인 일의 속성을 보여주듯 가지런하고 일정한 모눈이 그어져 있다.>    

 

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놀랍다. 계속 읽어보자 

<낡고 오래된 것들이 품고 있는 편안한 느낌은 이 책의 외연에까지 확장되어 이어져 있는데, 이를 테면 근사한 종이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촉들이다. 책을 감싸는 표지는 까슬한 종이의 맛을 직접 쓰다듬어 느낄 수 있게끔 언코티드(un-coated)로 처리되어 있으며, 내지의 종이 또한 매끈한 코팅지보다 덜 매끈해도 특별히 손으로 만졌을 때의 질감이 잘 전해지는 종이로 선택되어 있다. 두어 군데 반투명한 트레이싱 지가 곁들어 은근히 비치는 그림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낡아서 해지고 뜯긴 듯한 느낌의 빈티지한 모티프들로 그림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를 연출했다. 그 위로 영혼과 남자의 시간이 세밀하고도 조심스럽게 그려진다. 연필 선이 만들어내는 모노톤의 장면들은 먹먹하고 때로는 불안하지만, 그럼에도 그 간절한 순간들을 아름답게 포착했다.> 

자신이 나타내고자 하는 영혼이라는 감성을 마치 공감각적으로 표현한거 같다. 모노톤의 그림, 좌측과 우측의 표현공간 분리, 그림의 감성에 맞는 종이질감...이런 것이 하이브리드 그림책이 아닐까 싶다. 매우 독창적이다. 

보통은 궁금하지 않은데 이 그림책은 글쓴이와 그리는이가 어떻게 소통했을까도 궁금한 책이다. 신선한 충격이다. 이 책은 소장해야할 책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