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데이비드 소로 글, 지오반니 만나 그림, <월든>, 정회성 옮김, 길벗어린이, 2020년

2021. 7. 11. 10:09카테고리 없음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그림으로 글쓰기 동문회에서 하는 매월 모임에서 발제를 해야하는데 주어진 주제는

<돈>이었다.  money도 되고, 돼지도 되고, turn도 되고, done도 된다고 마치 운을 띄울테니 시는 각자 만들어내라는 것처럼. 재밌는 제안을 해주셨다.  별별 생각을 해봤는데 done 에서 연상된 'well done! (잘 했어!)'란 의미가 있는 그림책을 찾아보는것도 재미있을거 같아서 앤서니 브라운 <꼬마곰과 프리다>를 골랐었다. 이 그림책은 한 친구가 자유롭게 특정 모양을 그려서 다른 친구에게 주면, 그 그림을 전달 받은 친구가 자신이 생각나는대로 그림을 이어 그리는 내용이었다. 그글동에서 제안한 형식과도 잘 맞는 듯했다. 그런데 <월든>도 돈보다 가치 있는 삶을 이야기하는 책이고, 같이 빌려온 <싫다고 말 못하는 아기 돼지 네네>도 재밌어서 또 고민을 해야했다. 

 

결국은 뒤통수를 맞은 듯한 의외성이 재밌는 <싫다고 말 못하는 아기 돼지 네네>로 발제 도서를 정하기로 하고

<월든>은 오늘 아버지 기일을 기념하는 책으로 하기로 했다. 

아버지는 16살때 일찍 가장이 되셨다. 그 후 두 어린 동생을 먹여 살리려 일선에 나가게 되셨고 그때부터 거의 

평생을 일만 하셨다. 장남이자 가장의 무게. 생존에 대한 절박함. 역시 나이 오십인 가장이지만 아직도 막내이며, 

아내과 중학생 딸래미가 있는 나지만 아버지의 중압감을 헤아리긴 여전히 쉽지않다. 

아직 월급을 받고 있는 평범한 샐러리맨이고, 집에서의 살림도 거의 아내가 꾸려가고 있기때문에 (물론 정신적인 노동이 주체성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만든 우주라는 충만한 느낌은 아닌거 같다.  나의 정신과 근육, 시간을 들여 만든 결과물에 향한 동경심이 있다. 

아버지는 그 시대 다른 많은 아버지들도 그러셨겟지만 집에서도 매주마다 일을 쉬지 않으셨던거 같다. 초등학교 때 기억엔 옥상에 평상과 역기가 있었는데 나무와 시멘트를 가져다 손수 만드신것들이었다. 

지금도 내 나이 또래 아빠들중에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만들기 좋아하는 아빠들이 많다. 나는 손으로 뭘 만드는 재주가 많이 떨어져 기껏해야 군대에서 배운 삽질이나 톱질로 정원을 보수하는 정도다. 

 

지금도 내가 스스로 만드는 세계에 대한 결핍감은 늘 있는데   그러다 <월든>을 보니  공감이 많이 됐다. 1817년에 태어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1845년부터 2년 2개월 동안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는데 생각해보니 그의 나이 28에서 30살까지다. 

한참 혈기왕성한 나이에 호숫가로 들어와서 살았던 것이다. 물질에 얽매이지 않고 소박하게 살고자, 나름대로의 인생을 살고, 죽음을 맞게 되었을 때 헛되이 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자...

<나는 자연인이다>를 의외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즐겨보는 프로그램으로 알고 있는데 <월든>이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스테디셀러임이 말해주듯, 이런 삶을 동경하는 사람이 아마도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타샤 튜더나 헬렌 니어링, 스콧 니어링 책이 꾸준히 나가고 사랑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계 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라고 생각한다. 시련을 견디는 힘 또한 그렇다. 

난 서른살 때 책에는 관심이 많긴 했으나 사람들 만나 술마시는걸 제일 좋아하는 철부지였다.  자연이나 주체적 삶에 대해서는 1도 관심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서야 매일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정원을 보며, 다 죽은 줄 알앗던 포도나무에서 새싹이 올라오는 것을 보며, 지나가던 새들이나 고양이들이 우리집 마당에서 노닐다가 가는 것을 보며 

이 작은 우주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고요한 호숫가 월든에서도, 우리집 정원에서도 많은 일이 지금 이 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혼자서 호숫가에 집을 짓고 살아도 그리 외롭진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요즘은 인터넷도 있으니... ㅎ 

나는 창문을 열면 숲과 정원이 보이는 지금 우리집이 좋다. 넥타이를 매고 살긴 싫다는 확신에 찬 예감은 어찌어찌 내 삶을 이끌고 있지만 주체적인 삶으로서의 충만함은 아직 반도 채워지지 않은 느낌이다. 

 

사랑해요 아버지. 존경합니다. 그곳에서는 좋아하시던 화초키우시면서 친구분들과 가끔 술 한 잔 씩하시면서 즐겁게 보내고 계시길 바랍니다.  

 

- 아버지 1주기에 막내가 - 

 

* 그림책은 그리움이다